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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쿠데타 성공과 실패한 아랍의 봄 (경향 20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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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집트 쿠데타 성공과 실패한 아랍의 봄
<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입력 : 2013-08-27 22:54:14

 

지난주 이집트 군부는 쿠데타 성공을 화려하게 자축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서방 언론과 일부 아랍왕정들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더욱 의기양양했다. 이로써 아랍의 봄은 다시 겨울로 돌아가고 있다. 서구의 이슬람포비아는 극성을 부리고, 미국의 야욕적 중동정책도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슬람 세계마저 양분되면서 터키·이란·카타르는 무함마드 무르시 진영에,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연합·쿠웨이트 등은 쿠데타 세력 편에 섰다. 30년 독재군부 통치를 무너뜨린 민주정권이 다시 잔혹한 쿠데타로 붕괴되고 수천의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시각, 독재자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부활해 감옥에서 석방됐다. 인류역사는 지난 한 달 동안 크게 뒷걸음질 쳤다. 아랍의 봄을 예찬하며 지난 2년간 독자들을 우롱했던 아둔한 칼럼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경이다.

이집트 쿠데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힘이 압도적인 중동에서 이슬람 정당의 집권은 시기상조라는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줬다. 일시적 승리에 도취한 이슬람 세력들은 시민들을 등에 업고, 서구가 주창하는 민주와 인권이란 허울만 믿고 날뛰다가 튀니지·예멘·알제리·리비아, 심지어 터키에서조차 낭패를 당하고 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분노를 삭이고, 발톱을 감추면서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격정적이고 오만하고 폐쇄적이고 무능하기까지 했다. 이집트의 무르시 행정부도 그랬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긴 암흑의 독재터널에서 스스로 빛이 되고, 지치고 버림받은 시민들의 따뜻한 등받이가 돼주던 무슬림형제단의 신화는 사라졌다.

무르시의 최우선 과제는 반서구적인 슬로건이나 이슬람 가치 강화가 아니었다. 의식주 해결과 치안, 직장을 잃은 젊은이들의 꿈을 채워주는 일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사우디아라비아 왕을 만나고 산유국으로 날아갔어야 했다.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워싱턴에 가서 경제원조를 계속해 달라고 버락 오바마에게 매달려야 했다. 동시에 이집트 경제 절반 가까이를 장악하고 있는 군부 기득권 세력들에게도 고개를 조아리며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를 던져야만 했다. 민생을 먼저 해결하고 나서, 긴 호흡으로 이슬람을 되찾고 군부를 길들이는 일을 시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급했다. ‘이슬람 정치세력은 위험하고, 반서구 반왕정’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씻어주지 못했다. 저항에 익숙한 체질에서 책임있는 성과를 보여야 하는 집권당 체질로 바뀌지 못한 탓이다. 이웃 터키를 보라. 이슬람 정당이 집권해 군부를 통제할 때까지 꼬박 50년을 기다렸다. 그동안 세 번의 유혈 쿠데타와 세 번의 무혈 쿠데타로 국민들이 선거로 뽑아준 민주정권을 포기해야 했다. 세속주의와 결탁하고 일부다처, 간통죄, 사형제, 여성차별 같은 전근대적 이슬람 관습을 과감하게 철폐했다. 이집트 무슬림형제단도 이제 최소 30년을 내다보는 장기 잠복작전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억울하고 안타깝지만 1400년 이슬람 역사에서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던 방식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수니파는 인내와 침묵으로 힘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리는 법을 가르친다. 시아파는 언젠가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으며 때를 기다린다. 호메니이가 1979년 구세주로 칭송받으며 이란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이유다. 카와리지파는 극단적인 저항으로 과격하고 무모하게 협상없이 정면 승부한다. 오늘날 알카에다의 투쟁방식이다. 수니파 주류 무슬림형제단도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문명적 행태에 분노를 터트리고 이웃 아랍국가들의 배반을 통탄하기에 앞서 새로운 투쟁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을 배제한 새로운 정치지형으로 새 판을 짜려 할 것이다. 이미 테러집단으로 몰린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적 입지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고, 그들이 결사항전을 시작하면 이집트는 내전상태로 돌입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원하는 또 다른 상황을 만들어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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